하나님의 때 (욥기 2장 묵상)

욥기 2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어떤 번역에는 천사들)과 사탄과 함께 하는 하늘나라의 회의가 다시 열렸다. 세상을 두루 다니다가 욥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던 사탄에게 “거봐라, 욥이 믿음을 지킬 거라 하지 않았느냐!”며 다시 한 번 욥의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지 않음을 자랑하신다. 벌써 세 번째 자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당한 고난의 무고함(까닭 없음)이 강조되는 듯하다.

어제 본문에서 ‘물질의 복을 주니 하나님을 믿는 거 아닙니까’라며 고소했던 사탄은, 이번엔 건강을 물고 늘어진다. 가죽과 가죽을 맞바꾸듯이 생명을 지키기(건강을 지키기) 위해 모든 소유물을 내놓지 않느냐, 건강을 치면 틀림없이(surely)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 한다. 이 어의 없는 제안에 대해 (여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거래를 허락하신다. 생명줄만은 끊지 말라는 조건을 달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욥에게 그 당시 문화에서 하나님께 저주 받은 자라 여겨질 만한 종기를 얻게 된다. 아내에게서 조차 차라리 온전함을 지키느라 난리 피우지 말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그러나 욥은 끝내 자신의 입술을 지켜낸다. 이 소식을 들은 욥의 세 친구들도 찾아와 이해할 수 없는 욥의 상황에 대해 참담함으로 그의 곁에 7일을 머무르게 된다.

모든 소유를 잃어버린 욥에게 최후의 무기로 건강(생명)을 건드리는 사탄의 전략을 되짚어 본다. 하나님께서 생명은 보존하라 하셨으나, 이유 없이 고난을 당하는 욥이 그 사실을 알 리 없다. 더구나 그의 질병은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였다.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아내마저도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할 지경이지 않았는가. 그런 상황이었기에 욥의 온전함(하나님에 대한 신실함, integrity)은 더욱 빛나 보인다.

반대로 나는 어제 묵상을 하면서 욥에게 ‘왜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느냐 이건 오히려 고통에 대한 비정상적인 반응이 아니냐’라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어떻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느냐고 충돌질하는 욥의 아내와 나의 생각은 닮아 있다. 어찌 보면 이런 류의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탄의 전략이란 생각이 든다.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의 영향력을 벋어나려는 우리의 죄성이 내 생각의 곳곳에서 나타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연약한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욥의 온전함은 내 좁은 생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으로 사탄이 건강 문제를 걸고 넘어진 부분을 생각해 본다. 아마 내가 욥이었다면, 한때 성실함으로 풍족함을 이루고 누렸던 나였더라면,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희망은 가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다시 열심히 살면, 최선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건강은 하나님이 아닌 나를 의지하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인 셈이다.

그런데, 마지막 불씨와도 같던 건강마저 잃어버리고, 게다가 사람들의 저주와 같은 시선이 겹쳐졌을 때의 고통이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다. 내가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던 그것마저 놓게 될 때, 그 때가 하나님 일하기 시작하실 때라는 말이 생각난다. 욥은 그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었을까…

추신. 욥에게도 찾아와 주고 그의 곁에서 칠일 주야로 함께 해주었던 친구들, 그들이 해준 것은 그저 함께 해주는 것 뿐이었다. (비록 3장부터 친구들의 속을 후벼파는 말들을 쏟아냈을지언정) 고통을 당한 친구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함께 해주던 그들의 모습이, 세월호의 아픔을 겪는 유가족들에게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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